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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황재균 가족 부모님 부인 아내 티아라 지연 결혼 나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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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황재균 가족 부모님 부인 아내 티아라 지연 결혼 나이

yikg57 2022. 12. 10. 19:15

지연♥황재균 결혼…동화같은 웨딩화보 공개
- 2022. 12. 10.

그룹 티아라 멤버 지연(본명 박지연, 29)과 야구선수 황재균(kt wiz 내야수, 35)가 오늘(10일) 결혼하는 가운데, 동화같은 웨딩화보가 공개됐습니다,.

지연과 황재균은 10일 서울 모처에서 웨딩마치를 울린다. 비공개로 열리는 이날 결혼식에는 가족, 친지들과 연예계, 야구계 스타 등 지인들이 참석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한다.


지연은 이날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SNS에 별다른 멘트 없이 웨딩화보 여러 장을 공개했다. 꽃에 둘러쌓여 촬영한 웨딩 화보 속 지연은 황재균의 목을 끌어안고 있거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몽환적이면서도 한 편의 영화 스틸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시선을 붙든다.

여기에 선글라스는 쓰고 코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웨딩화보를 비롯해 지연이 한복을 입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단독 웨딩화보 등도 공개돼 눈길을 모은다.

지연과 황재균은 지난 2월 열애 소식과 함께 결혼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각각 SNS에 자필편지를 공개하며 결혼을 발표했답니다.

지연은 SNS에 자필 편지를 공개하며 “작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어 좋은 감정으로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 언제나 저를 먼저 배려해 주고 아껴주며 저에게 행복이란 걸 알려준 제 인생에 선물 같은 남자친구와 다가올 겨울에 결혼을 약속했다”라고 결혼을 알렸다. 직접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황재균이라는 것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황재균과 함께 찍은 커플 사진을 공개했다.

황재균 역시 SNS에 자필 편지를 올리며 “제가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며 “작년 한창 힘든 시기에 만나 흔들리던 저를 단단하게 잡아주고 옆에 있다는 존재만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와 함께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혼식까지, 그리고 결혼 후에도 행복하게 예쁜 사랑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답니다.

이날 예식의 축가는 가수 아이유가 부른다. 아이유와 지연은 가요계 소문난 절친이다. 1993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신인 시절인 2010년 SBS 예능 ‘영웅호걸’에 함께 출연하며 우정을 쌓았고, 프로그램 종영 후에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왔다.

이에 아이유는 절친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선물하며 지연이 맞이하게 된 ‘인생 2막’을 축복할 예정이다.이 외에 티아라 멤버들의 깜짝 축가 가능성도 있다.

지연은 지난 2009년 그룹 티아라로 데뷔했다. ‘거짓말’, ‘너 때문에 미쳐’, ‘보빕보빕’, ‘왜 이러니’, ‘롤리폴리’ ‘크라이 크라이’, ‘러비 더비’, ‘데이 바이 데이’ 등 히트곡을 연달아 내놓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또 드라마 ‘공부의 신’, ‘정글피쉬2’, ‘드림하이2’, ‘이미테이션’, 영화 ‘고사 두번째 이야기: 교생실습’ 등을 통해 연기자로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년 1월 5일 영화 ‘강남 좀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황재균은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며 프로야구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다. 2017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미국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기도 했다. 2018년 한국에 복귀한 뒤에는 KT 위즈에서 활약 중이랍니다.

- 황재균 프로필 경력 이력

나이
생년월일 1987년 7월 28일(35세)

고향
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3 cm
체중 96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3루수, 1루수, 유격수

프로 입단 년도 2006년
드래프트 순위 2006년 2차 3라운드(현대 유니콘스)

획득 타이틀
2012년 KBO 올스타전 MVP
2020년 KBO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계약금 6,000만원
연봉 4억원 (2022년)

경력 살펴보기
현대 유니콘스 (2006년 ~ 2007년)
우리 히어로즈·
히어로즈· (2008년 ~ 2010년)
롯데 자이언츠 (2010년 ~ 2016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7년)
kt 위즈 (2018년 ~ 현재)

KBO 리그 kt 위즈의 내야수이다. 그의 어머니는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인 설민경이랍니다.

- 플레이스타일

요약하자면 박재홍의 하위 호환인 5툴 플레이어.

일단 발은 빠르지만 도루 센스는 좋지 않다. 2009시즌 30도루 15도루자, 2010시즌 18도루 7도루자, 2011시즌 12도루에 6도루자로 도루자가 꾸준히 많았다. 2012시즌 26도루, 8도루자를 기록하며 주루 센스에 발전이 있는 듯 했으나 2013시즌 22도루 11도루자, 2014시즌 17도루 10도루자로 쭉 두 자리수 도루자를 기록했고 2015시즌 11도루에 10도루자로 도루와 도루자가 거의 일대일로 대응되는 최악의 도루 성공율을 보여줬다. 커리어 하이인 2016시즌에도 25도루 10도루자에 불과하답니다.

대충 2할 중, 후반대의 타율에 평균 이상의 3루 수비 능력까지는 기대할 만한데 장타력이 홈런 10개 넘기기도 힘들어져서 맞트레이드 된 김민성이 두 자리 수 홈런에 4할 중반대의 장타력을 장착한 것과 비교되며 욕을 얻어 먹고 있다. 하드웨어나 타고난 툴은 분명히 황재균이 더 나은데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화려하나 안정성이 떨어지는 수비 또한 비판의 대상인데, 2011 시즌에는 김상수와 리그 실책 공동 1위를 했고. 2012 시즌은 오지환이 독보적이라 가려져서 그렇지 이원석과 함께 리그 실책 공동 2위다. 2013시즌 막판까지 오지환, 최정과 실책 왕 경쟁을 하다 결국 리그 3위를 차지했다. 백업이 없어 혹사에 가까운 출장을 강행한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주루 센스 말고는 딱히 성장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탑 클래스라고는 못해도 웬만한 팀의 주전 3루수로서는 큰 문제 없는 수준이랍니다.

가장 큰 장점은 몸이 굉장히 튼튼하고 힘이 좋다는 점. 2012시즌부터 2014시즌까지 3년 연속 전 경기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유연성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는 걸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기록이다. 폭발적이진 않아도 갑작스런 부상으로 시즌 구상을 어그러뜨리는 일 없이 일정한 몫을 해준다는 점에서 감독들이 좋아할 만한 선수다.

2013~2014 시즌 발전하지 않을 줄 알았던 선구안이 조금씩 발전했다. 특히 2014년의 출루율은 커리어 하이. 타고 투저에도 불구하고 장타력은 신인 시절에 비해 아쉬웠지만 공을 오래 보는 것을 중시하는 박흥식 코치의 영향인지 다른 쪽에서 성과가 있었다. 주루와 수비도 미세하지만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타고난 툴은 뛰어나지만 그 툴을 활용하기 위한 야구지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노력으로 서서히 메워가는 대기만성형 선수라 볼 수 있답니다.

다만 팬들은 새로운 장종훈 코치 하에서는 그래도 홈런 수가 증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중. 그리고 장타력 향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벌크업과 함께 장종훈 코치의 버프를 받아서인지 부상으로 인한 결장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는 5월이 가기 전에 14년의 홈런 개수를 추월해버리고 전반기에만 커리어 첫 20홈런을 넘겨버리면서 장타 포텐이 다시 터졌답니다.

황재균의 2012~13시즌을 보면 넥센에서의 포텐이나 제리 로이스터 말기-양승호 초기 보여준 포텐은 다 어디다 팔아먹고 전형적인 롯데의 안터지는 툴 가이 테크를 타고 있었다. 대표적인 선배격 선수가 KIA 가서 주루 수비 툴 다 잃고 유리 몸이 되고도 타격 커리어 하이 찍은 김주찬. 김주찬이나 황재균과 똑같이 20-20 포텐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경찰청 입대를 전후해서 정체하고 있는 전준우랍니다.

암흑기는 물론이고 로이스터 이후 암흑기를 겨우 탈출한 시기조차 롯데가 잠재력 있는 선수는 투타 가리지 않고 육성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재균은 트레이너를 바꾸는 등의 본인 노력과 롯데 구단이 개혁의 과정에서 외부에서 영입한 타격 코치들 박흥식, 장종훈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를 스스로 극복해내는 데 성공하고 KBO 탑급 야수로 성장했답니다.

만루의 사나이라는 이미지가 과장은 아닌 게 비율 스탯도 대부분 상승하는 편이며 20대 선수가 2016년 10시즌도 못 채웠는데 벌써 통산 만루 홈런이 7개다. 

- 국내리그에서는??

히어로즈 시절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며 선수단을 인계하고 새로 창단한 팀에서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5월 초까지만 해도 뛰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6월 중순 무렵부터 체력에 한계가 오며 공-수 양면에서 부진했다. 이 무렵 입단 동기이자 동갑내기 내야수인 강정호에게 유격수를 넘기고 3루수로 전업했답니다.

2009년

2008년 시즌 후 같은 소속 팀이자 고참 선수였던 3루수 정성훈이 FA를 선언해 LG 트윈스로 이적하자 이에 따른 공백으로 3루수로 완전히 정착했다. 시즌 초반부터 3루수로 꾸준히 기용되며 풀 타임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이 해에 그는 133게임 시즌 전 경기 출장을 소화하며 2할대 타율, 18홈런, 30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했답니다.

이 해에 그는 생애 처음으로 감독 추천을 통해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그는 호타준족형 선수로 강정호와 더불어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였다. 이현승, 이택근, 장원삼의 트레이드 파동 때에도 강윤구, 강정호와 더불어 팀에서 트레이드 불가라고 말했을 정도로 괜찮은 실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아 왔었으나 팀이 4강 싸움이 한창일 때 익숙치 않은 거포 스윙과 초구병으로 4강과 20-20 둘 다 놓쳤답니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

넥센 히어로즈에서 2010년 시즌 초부터 컨디션 난조와 손목 부상 여파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7월 20일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그,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내야수 김민성, 투수 김수화와 2:1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팀이 그를 영입하게 된 주 원인은 당시 3루수를 이대호가 맡고 있었고 3루수 특성상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부담을 줄여주고자 1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3루수에 적합한 선수를 찾지 못했고, 마침 넥센 히어로즈의 유망주였던 그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답니다.

이미 넥센 히어로즈 측은 2009년에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장원삼, 이현승, 이택근, 마일영을 각각 2010년 시즌 전 삼성, 두산, LG, 한화에 현금 트레이드 내지는 선수 + 현금 트레이드한 전력이 있었는데 KBO에서는 이와 같은 트레이드를 선수 팔기로 보아 2010년 말까지 현금 트레이드는 하지 못하도록 했다. 게다가 당시 넥센 히어로즈의 대표였던 이장석은 공공연히 "팀의 유망주인 그와 강윤구, 강정호는 팔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트레이드는 석연찮은 면이 있었습니다.

양 측은 정당한 전력 보강용 트레이드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 트레이드라고 주장했으나 뒷돈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 건은 넥센 히어로즈의 팬들은 물론 당시 감독이었던 김시진 조차도 배제된 채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루어진 이 트레이드는 다른 문제를 낳았는데, 그는 올스타전에서 서군 3루수로 선발됐고 동군에 속하는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할 경우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지 문제가 된 것이랍니다.


이는 한국은 물론 일본 올스타전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2010년 시즌 후 고원준이 이 팀으로 트레이드되며 2011년 트레이드 마감일에 있었던 박병호의 트레이드 영입 전까지 넥센 히어로즈는 트레이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KBO 측은 트레이드가 공식 발표된 7월 20일 이후 이틀이 지나도록 트레이드를 승인하지 않다가 7월 22일 양 측에 트레이드에 현금이 오고 가지 않았다는 내용 증명 문서를 접수하고, 넥센 히어로즈로부터는 더 이상 2010년 시즌에 선수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를 승인했답니다.

그리고 그의 올스타전 출전 문제에 대해서는 동군으로 출전하되, 선수 2명이 부족하게 된 서군은 감독 추천 선수를 2명 더 쓸 수 있도록 유권 해석했다. 이에 당시 올스타전 서군 감독이었던 조범현은 내야수 김선빈, 오지환을 추가로 지명했다. 트레이드가 승인됨에 따라 트레이드 대상 선수들은 당일 1군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됐고 그와 김민성은 트레이드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당일에 각각 당일 선발 라인업에 들며 경기를 치르게 됐답니다.

2010년

7월 22일 트레이드 승인 당일, 한화전에 선발 출장했다. 그는 3루수를 맡았고, 그 전까지 3루를 보던 이대호는 1루수로, 김민성이 보던 유격수는 문규현이 맡았다. 그리고 1루수와 외야수를 번갈아 보던 김주찬은 외야수를 맡았다. 이적 후 첫 경기에서 4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타격 면에서는 손목 부상의 여파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수비에서는 유격수와 3루수를 번갈아 보며 이대호의 수비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박기혁의 부상, 정보명의 부진으로 공백이 생긴 내야진의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답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 서군 올스타로 선정됐으나 올스타전 직전에 이적함에 따라 올스타전에서는 동군 올스타전 선수 엔트리에 들었다. 7월 24일 올스타전에는 교체 출전했는데, 예전 팀 동료였던 손승락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 내며 동군의 1점차 승리에 기여했다. 이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올스타전 '선구회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여 80경기 출장에 그쳤고, 강정호에게 밀려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답니다.

2011년
시즌 초 당시 감독이었던 양승호의 전력 구상에 따라 유격수로 출전했으나 문규현이 유격수로 자리잡아 원래 위치인 3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주자 만루시 타석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만루 홈런을 2번 기록했으며 만루시 5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1] 그러나 경기에서 많은 실책을 범했다. 포스트 시즌에서는 철벽 수비를 보여주며 5차전 때 실책을 제외하고는 4차전까지 실책을 하지 않아 '수비 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느린 땅볼 타구를 맨손으로 잡아 1루에 정확히 던져 주자를 아웃시키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줬고, 27개의 아웃 카운트 중 무려 9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2]

2012년
시작부터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수비에서 허슬 플레이를 보였다. 시즌 중 4번 타자로 잠깐 나섰지만, 주로 하위 타순에 나섰다. 올스타전에서 2타점 적시타이자 결승타를 쳐 냈고, 생애 첫 미스터 올스타에 뽑혔습니다.

2014년
팀에서 활약하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 처음으로 발탁됐다. 9월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2타점 적시타를 쳐 냈다. 이 결승점으로 한국의 역전승을 합작하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병역 혜택을 얻었다. 이를 통해 한국 최초 모자 아시안 게임 출전과 함께 모자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또한 사직야구장 3번째 장외 홈런을 쳐 냈다.

2015년
장타력 향상을 위해 비 시즌동안 벌크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몸무게를 100kg까지 늘렸고 장타력이 대폭 향상돼 전반기에만 22홈런을 쳐 냈다. 시즌 성적 2할대 타율, 26홈런을 기록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에릭 테임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WBSC 프리미어 12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돼 우승을 차지했다. 11월 30일 MLB 사무국에 포스팅을 요청했으나 응찰 구단이 없어 실패했답니다.

2016년
등번호를 13번에서 10번으로 변경했고, 시즌 중 주로 4번 타자를 맡았다. 팀 역대 2번째 20-20 클럽에 가입하며 팀 내 토종 선수 최초 20-20을 달성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FA 협상에서 국내 잔류와 해외 진출을 놓고 고심하다 MLB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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