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임권택 부인 아내 배우자 감독 나이 아들 영화배우 채령 본문

카테고리 없음

임권택 부인 아내 배우자 감독 나이 아들 영화배우 채령

yikg57 2022. 12. 20. 14:04

- 프로필 이력 경력 누구

이름 본명은?
임권택(林權澤)

출생 나이 생일
1934년 12월 8일 (88세)

고향 출생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단광리

학력
월평초등학교 (졸업)
장성중학교 (졸업)
광주숭일고등학교 (중퇴)

배우자 부인 아내 와이프
채령

자녀
장남 임동준
차남 권현상

임권택, 故 강수연 언급 “천부적 재능”→채령 “주식으로 5억 잃어” 고백
- 2022. 12. 12

임권택이 故 강수연을 언급했다. 특히 채령은 주식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답니다.


11일 방송된 TV조선 특집 다큐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임권택’에서는 60년간 한국영화사를 이끈 ‘거장’ 임권택 감독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날  임권택은 “영화를 천직으로 삼았고, 영화를 좋아했다. 100여편 중 가장 내세울 영화는 별로 없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좋아한 영화를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에 ‘난 참 행복한 이생을 살았구나’ 하고 생각한다”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우연한 계기로 20살 무렵 영화판에 뛰어들었던 임권택은 60년간 102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편영화를 만든 감독 중 한 명이 됐답니다.

임권택영화박물관을 찾은 임권택은 과거 쓰던 모자와 의자를 발견하곤 추억을 회상했다. 임권택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시작으로 개봉하는 영화마다 주목을 받았고, 해외 유명 영화제에 초청, 수상을 통해 높은 인지도를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제에서 총 13회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회 수상한 유일한 감독으로 ‘한국이 낳은 최고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임권택 감독에 있어서 배우 故 강수연의 언급은 피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강수연은 영화 ‘씨받이’로 1987년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의 기록이었다.

2년 후, 강수연은 다시 한 번 임권택과 함께 작품을 했다. 바로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당시 삭발 투혼을 선보여 모두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이 작품으로 강수연은 결국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임권택 감독의 진정한 뮤즈로 등극됐다. 수상 후 입국한 강수연은 “20여 년 동안 감독님과 붙어있었다. 그렇게 막역한 사이라 감독님이 ‘출연할 거냐’고 물어보면 카메오라도 출연할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답니다.

또 강수연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원래 자신이 한 연기는 만족할 수 없는 것 같다. 100% 만족하진 않는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죠”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이에 임권택은 “예전에도 한 이야기지만 강수연은 천부적인 연기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고, 연기를 해내는 데에 무서운 집념을 가지고 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정작 임권택은 자신이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임권택은 “그때 나는 반응을 알아보려고 수상한 걸로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덤덤했다. 대신 자신감이 생겼는데 우리나라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임권택은 2002년 영화 ‘취화선’을 제작, 칸 경쟁 부문에 초청 되면서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배우 최민식은 영화 ‘취화선’을 통해 임권택고 인연을 맺었고 그를 향해 “바위 같다”라고 표현했다. 최민식은 “딱 자리 잡고 있는 바위. 그게 작품을 만드시는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영화 한 편 제작하다 보면 별의 별일이 다 있다. 사람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정도 걸린 영화에 묵묵히 깊은 시선으로 영화를 들여다보시는 분이다. 다르다. 한 인물도 깊게 들여다 보시고 ‘내가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했구나’ 이런 걸 느끼게 된다”라고 설명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주연배우를 맡았던 신현준은 “감독님은 신인에게 용기와 웃음을 주셨던 감독님이다”라고 말했다. 임권택은 주연배우를 신인으로 기용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었다. 그렇게 ‘장군의 아들’로 데뷔를 하게 된 신현준은 당시 촬영을 떠올리며 “제 대사가 다 일어였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신현준은 “어느 날 아침에 현장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어 대사도 바뀌었다. 앞이 하얘지더라. 그런데 감독님이 ‘현준아 편하게 해라’라면서 앞에서 그냥 주무셨다. 편하게 외우라고 주무시는 척 해주신 거다. 감독님은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토닥거리고 배려하고 사랑해주시는 분이다”라고 전했다.

계속해서 임권택, 채령 부부는 1971년 영화 ‘요검’을 촬영하면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나 연인이 됐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무려 7년동안 비밀연애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촬영했던 선운사를 찾은 두 사람은 추억을 떠올렸고, 채령은 “여기 이런 모습들은 다 그대로인데 우리만 늙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평생의 동반자가 된 두 사람이지만 처음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채령은 “영화를 찍을 무렵에 집에서 우리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라고 이야기 했다. 임권택은 “그때 내가 책이지겠다고 했다. 걱정말라고 했다. 내가 어디까지 책임진다는 건지 장인, 장모님은 몰랐을 거다. 영화 현장에서 사고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책임진다는 게 인생을 책임진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그런 대답을 하고 부부가 됐으니 진짜 책임진 거다. 나는 처가댁 신용을 그렇게 얻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채령은 자신의 허물을 덮어준 남편 임권택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채령은 “제가 당시 주식이라는 걸 처음 들었다. 통장 밖에 몰랐다. 지인에게 1, 2천 씩 주다가 그걸 감독님이 알게됐고, ‘세상에 그런 벌이는 없는 거다’라며 단호하게 말하더라. 그런데 내가 ‘자기가 뭘 아냐’라며 고집을 부렸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면서 채령은 15년 전 5억 원 상당의 돈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임권택은 “나는 이 액수를 처음 듣는다”라며 놀랬지만 “한번도 물어본 적 없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채령은 “내가 가정부 한 번 안 쓰고 돈을 조금씩 모으고 있었고 이런 걸 전혀 몰랐다. 돈을 잃고서 ‘나 못 살겠다’고 하니까 ‘뭘 못 사냐. 시골가서 집 하나 얻고 살면 돼’라고 하더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임권택은 “평소 돈놀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가 끼어든 거라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사는 데에 지장을 줄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나는 원래 돈을 별로 가져본 적이 없으니 그거는 있다 없다 하는 거지”라며 말했다. 그러자 채령은 “어떤 남편이 한소리 안 하겠냐. 그런데 한마디도 안 해줘서 고마웠다”라고 전했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