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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 사망원인 영화배우 나이 가족 영화 정이 제작사 연상호 감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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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 사망원인 영화배우 나이 가족 영화 정이 제작사 연상호 감독

yikg57 2023. 1. 20. 21:54

강수연의 마지막 작품 《정이》, 2194년 우주에 기록되다
- 2023. 1. 15

배우 강수연(1966~2022)의 유작.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이렇게 수식할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시작점에 강수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물의 사적인 이야기를 SF 영화로 구현하는 '쉽지 않은 그림'은 강수연으로 인해 비로소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강수연의 10여 년 만의 복귀작이자 마지막인 작품이기도 한 《정이》는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지옥》을 만든 연상호 감독의 첫 SF 연출작이라는 수식어와 맞물려 기대감을 키웠답니다.


강수연은 제작보고회에서 공개된 생전 촬영 영상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SF를 만들고 싶다는 연상호 감독의 말을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2194년, 인류가 지구를 떠나 정착한 우주의 '쉘터'다. 이곳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전쟁 영웅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한 뒤 기계 육체에 심어 생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 연구의 책임자는 정이의 딸인 서현(강수연)이다. 영화는 서현의 심리를 따라간다. 죄책감과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지적인 캐릭터는 강수연 특유의 목소리와 만나 몰입감을 선사한다.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을 '《정이》의 시작과 끝'이라고 되새겼다. 연 감독은 《지옥》을 촬영할 당시 《정이》의 대본을 썼지만, 영화화하겠다는 의지는 크지 않았다. 서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SF 영화로 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현 역으로 강수연을 떠올리고 나서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강수연의 "한번 해보자"는 말이 《정이》의 시작점이 됐다. 그는 "서현을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강수연 선배 이름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처음 선배님과 통화를 하고 티셔츠가 땀으로 다 젖을 정도로 떨렸다"고 했답니다.

결국 연 감독이 《정이》를 기획하고 영화화한 원동력은 강수연이다. 강수연은 현장을 좋아하는 배우였고, 후배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연 감독은 말했다. 정이 역을 맡은 김현주는 "현장에서 선배나 어른이 아닌 동료로 있어 주셨다"며 "굉장히 열정적이셨고, 배우로서 고민도 많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 밖에서도 후배들을 많이 챙겨주시는 선배였다"고 회상했다. 류경수 역시 "선배 같은 어른이 되고 싶고,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며 "강수연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큰 영광이었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글이 적혔다.

강수연은 아역 배우 출신으로, 청춘스타이자 월드스타였다. 3살 때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1976년 이혁수 감독의 《핏줄》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영화 《깨소금과 옥떨메》(1982),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와 같은 하이틴 작품으로 당대 최고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송영수 감독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로는 그 해 대종상 여자 인기상과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답니다.

한편,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1986)를 통해 월드클래스 배우로도 도약했다. 이 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배우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이라는 역사를 썼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베를린 리포트》(1991),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3) 등 영화에서 도회적인 연기를 보여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같은 작품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에는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출연해 35%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이끌었답니다.

강수연은 2011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이후 상업영화 출연을 중단하고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영화계 발전에 힘을 보탰다. 단편 《주리》(2013) 이후 10년의 공백기를 단숨에 메워내고 《정이》로 복귀한 그는 촬영을 마친 뒤인 지난해 5월 급성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정이》는 강수연의 유작이자, 처음이자 마지막 SF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 강수연의 작품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에게 기억될 작품인 《정이》는 1월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답니다.

너무 당당해서 너무 외로웠던 스타"..'韓최초의 월드스타' 故강수연, 영면에 들다
- 2022. 5. 11.

별보다 아름다운 별, 한국 최초의 월드스타 강수연이 슬픔 속 영면에 들었다.

고(故) 강수연의 발인식은 11일 오전 10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의 사회는 후배 유지태가 맡았다.


가장 먼저 유지태는 "별보다 아름다운 별, 강수연 님의 영결실을 거행하겠다"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아직 실감이 안난다. 그저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좋겠다. 수연 선배를 떠나보내는 자리에 가족들과 영화계 선후배들이 함께 해주셨다"고 인사를 대신했다.

이어 김동호 장례위원회 위원장이 추도사로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황당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떠나보내고자 한다"고 먹먹한 마음을 전했답니다.

그는 "수연 씨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둣집에서 만난지 채 한달도 안됐는데, 건강하게 보였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처음 만난지 33년이 지났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냈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나"라며 한탄했습니다.

이전어ㅔ 강수연은 지난 5일 오전부터 자택에서 두통을 호소하다 이날 오후 5시께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사흘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지난 7일 오후 3시 사망했답니다.

한편 강수연은 1969년 4살의 나이로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방영된 KBS1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80년대를 대표하는 '하이틴 스타'로 거듭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5년 영화 '고래 사냥 2'(85, 배창호 감독)를 통해 성인 배우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87, 이규형 감독)를 통해 그 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꿰차며 '흥행 스타'로 인기를 입증했답니다.

'하이틴 스타'에서 '청춘 스타'로 등극한 강수연은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의 월드스타가 됐다. 삭발을 하며 연기혼을 보여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89, 임권택 감독)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고, 1990년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89, 장길수 감독) '경마장 가는 길'(91, 장선우 감독) '그대 안의 블루'(92, 이현승 감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95, 오병철 감독) '처녀들의 저녁식사'(98, 임상수 감독)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특히 '경마장 가는 길'을 통해 제1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대만의 블루'를 통해서는 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받기도 했답니다.

이후 한동안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완벽히 재기, 시청자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고인의 연기 경력 최초 전인화와 함께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답니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을 맡기도 했던 그는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정부의 간섭으로 위기에 처하자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2017년까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제를 위해 헌신했다. 뛰어난 배우를 넘어 전 세계에 한국영화를 알린 스타였고, 강력한 리더이자 여성 영화인의 롤모델이었던 그는 최근 연상호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이'에 출연하며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알렸지만 안타깝게 타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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